먼 과거와 먼 미래를 잇는 희망
민음사 2025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윤강은 장편소설 『저편에서 이리가』.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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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오늘의 작가상’이 10년 만에 공모제로 돌아왔다. 공모제로 전환된 첫 해 투고된 작품은 330여 편. 수상의 영예는 2000년생 작가 윤강은의 데뷔작 『저편에서 이리가』에게 돌아갔다. 『저편에서 이리가』는 흡인력 있는 문장과 탄탄한 전개,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생명력 넘치는 인물들로 새로운 목소리의 출현을 예고했다. 특히 디스토피아, 판타지,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능숙하게 활용하면서도 현실감 있고 입체적인 세계로 그려 낸 ‘한반도’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정치적·역사적 갈등에 붙들린 현재의 관점에서 벗어나 오직 ‘미래의 시선’으로 과감하게 발굴하고 조명해 낸 ‘새로운 한반도’라는 평이었다. 




재학 중에 문학상을 수상하고, 수상과 동시에 데뷔작을 책으로 선보이며 독자와 만나게 되었어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진부한 말이지만, 너무나 큰 행운이어서 아직도 얼떨떨해요. 책이 나왔다는 것도 실감이 잘 안 나고요. 그래서인지 아직 독자의 존재가 잘 와닿지는 않는데, 제 소설이 독자들에게 읽힌다는 것에 점차 익숙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수상 소식을 들은 후 지금까지 저를 가장 빈틈없이 행복하게 해 준 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어요. 가족들부터 친구들, 선생님들까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진심 가득한 축하와 응원을 보내 주셨거든요. 그때 받은 마음들을 되짚다 보면 매번 뭉클해지곤 해요. 수상했다는 사실만큼이나 이런 사람들이 제 곁에 있다는 사실이 행운처럼 느껴져요.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나요? 어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갖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아홉 살쯤에 쓴 동시가 기억나네요. 노트 한 장에 ‘세상은 자라는구나’라는 제목과 함께 새싹을 밟으려다 멈칫하는 사람의 그림을 그려 두었어요. 자신이 자라는 것보다 새싹이 자라 있는 것을 더욱 선명하게 감지하는 화자였어요. 『저편에서 이리가』를 비롯해 앞으로 제가 쓸 소설들과 어느 정도 연결되는 감각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스무 살에 갑자기 진로를 크게 틀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럴듯한 계기가 없었어요. “날벼락을 맞았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 왔는데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늘 글을 쓰고 있었어요. 앞에서 말한 동시 같은 그 글들이 지금의 제 소설의 밑바탕이 된 것 같아요.

 

『저편에서 이리가』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한반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입니다. 종말을 앞둔 한반도를 서로 다른 정치체제의 세 구역으로 설정한 것이 흥미로웠어요. 농사를 짓는 ‘온실 마을’, 철을 가공하는 ‘한강 구역’, 군대로만 구성된 ‘압록강 기지’.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이면서도, 가장 먼 과거와 맞닿아 있는 풍경처럼 보여서요. 이런 한반도를 상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공간보다 호명에 대해 먼저 생각했어요. 글을 쓸 때도, 일상에서도 유난히 저를 사로잡는 이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의 경우 ‘압록강’이 그랬어요. 발음 자체가 주는 느낌도, 떠오르는 이미지도 좋았어요. 지금의 압록강이 사라지더라도 이름은 남겨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이름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뜻을 모르고 계속 그 자리를 ‘압록강’이라고 부르고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공간 구성이 시작되었어요. 생각하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오래된 것들이 참 많잖아요. 소설 속 구역마다 과거와의 연결성을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다섯 인물 각각의 감정선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하나의 상황 안에서 인물이 번갈아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으로 비추는 소설이에요. 그래서인지 소설 속 세계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그려지는 동시에, 인물들이 경험하는 감정들도 선명히 느껴졌습니다. 이런 인물과 관계, 그리고 서술 방식을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편에서 이리가』는 제가 습작해 온 소설에 비해 설정과 플롯이 강한 편인 소설이지만 인물들은 외부 세계보다는 그들의 내면을 따라 움직입니다. 가장자리의 경계에 위치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그들 각자가 벌이는 투쟁, 그들을 기어코 살게 하는 것들. 인물과 세계보다는 인물과 인물 간의 대면을 통해 발생하는 것들을 상상하는 일에 늘 관심이 많아요. 이런 맥락에서 직감적으로 선택한 서술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저보다는 소설 속 인물이 선택한 방식인 것 같지만요. 저는 인물들을 소설 안에 풀어놓았을 뿐 서로 마주 보고 관계를 쌓으며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것은 제가 아니라 인물들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물이 저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을 참 좋아해요. 오랫동안 잊지 못할 짜릿함을 줘요.

 

인물들이 발견하는 ‘희망’이 저마다 달라요. ‘유안’이 죽은 친구가 건네준 ‘생명도감’ 속에서 필사적으로 희망을 찾아보려 하는 인물이라면, ‘화린’은 낯선 세계나 타자를 향해 감각을 활짝 열어 두고 이끌림을 믿는 인물이죠. ‘기주’는 내내 외면했던 자신의 내면에서 희망을 재발견하고, ‘백건’은 처음부터 알고 있던 ‘답’을 상대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 꺼내는 인물인 듯합니다. ‘태하’는 희망을 발견했다고 믿고 그에 따랐으나 결국 배반당하는 인물이고요. 그중에서 작가님이 가진 희망, 혹은 가장 믿는 희망이 있다면요?

저에게 가장 와닿는 희망은 태하의 것이에요. 태하는 ‘힘’을 따라요. 강대국이 제시하는 비전, 그 너머에 있는 ‘힘’을 믿기로 하죠. 그건 살기 위해서 굳게 믿어 버린 희망일 거예요.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숨을 부지해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서. 반면 가장 어렵다고 느껴지는 건 화린의 희망이에요. 화린은 유령 아이의 목소리를 좇아 목숨을 걸고 설원을 헤매죠. 무모하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런 화린을 닮고 싶어요. 정리하자면, 안쓰럽고 이입이 되는 것은 태하 쪽이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화린 쪽이에요. 더 오래 이어지고 전승되어야 할 것도 화린의 희망이라고 생각하고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작가님의 개성이 있나요? 그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을 소설 속에서 한 군데 꼽는다면?

공간을 중시하는 편이에요. 공간이 또 하나의 인물 같은 소설을 좋아합니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성만큼 인물과 공간의 상호작용에 집중하며 써요. 이를테면 『저편에서 이리가』의 아름답고도 위험천만한 설원이요. 쓰면서 설원이 가장 매혹적으로 느껴졌던 순간은 화린이 화이트아웃을 맞닥뜨렸을 때였어요. 그 장면을 꼽아 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쓸 거라는 거예요. 소설을 좋아하고 소설에 푹 빠져 사는 것만큼은 꽤 자신 있거든요. 집필 혹은 퇴고 중이거나 집필 계획 중인 소설이 많아서 일단 그 작업들을 정리해 볼 생각인데요. 언제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스스로를 파고들어 이해하기 위한 작업을 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저는 제 상태와 감정에 대해 뒤늦게 깨닫거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 나를 가로막은 것은, 혹은 추동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자문에 답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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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